나는 비정규직 근로자다.
회사의 임시 책상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사람.
커피 한 잔 마시는 것도 누군가의 눈치를 봐야 하고,
언제 통보받을지 모를 계약 만료라는 칼날 위에 서 있는 사람.
그래서 영화 《인턴》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이 이야기를
'은퇴한 노신사의 훈훈한 오피스 적응기' 따위로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는 **"현대 사회가 인간을 어떻게 소모품처럼 다루고,
그 틈에서 우리는 어떻게 존엄을 지키려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읽고 싶었다.
이 영화는 겉으론 따뜻한 코미디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오늘도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인턴'들의 불안과
'늙은 인턴'이 되어도 달라지지 않는 일터의 냉정함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 줄거리 : 70세 인턴, 20대 상사의 세계에 들어가다
《인턴》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70세의 은퇴한 홀아비 벤 휘태커(로버트 드 니로)는
퇴직 후 느끼는 공허함과 무료함에 지쳐
온라인 패션 회사의 '시니어 인턴 프로그램'에 지원한다.
그곳에서 벤은 30대 젊은 CEO 줄스 오스틴(앤 해서웨이)의 인턴으로 배치된다.
줄스는 야망 있고 능력 있는 여성 CEO지만,
일과 육아, 그리고 불안정한 회사 경영 속에서 스스로도 위태로운 삶을 살고 있다.
초반 줄스는 벤의 존재를 번거로워하고 불편해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벤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든든한 조언자,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결핍된 부성애를 채워주는 사람이 된다.
벤은 젊은 세대의 혼란과 초조함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줄스 역시 벤을 통해
'일'만이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 아님을 배워간다.
■ 비평 : 따뜻한 영화, 그러나 현실을 잊은 판타지
《인턴》은 한마디로 '힐링 오피스 영화'라 불릴 만하다.
다정하고, 유머러스하고, 무엇보다 '정이 넘친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가 가진 본질적 한계를 짚고 싶다.
첫째, 이 영화는 현대 노동 환경의 불안정성과 차가움을 너무 쉽게 '따뜻한 말 한마디'로 덮어버린다.
벤이 다니는 스타트업 회사의 인테리어는 밝고 자유롭지만,
현실에서 그런 공간조차 비정규직들에게는 임시적 공간이다.
영화 속에서 인턴들은 즐겁고 자유롭게 일하지만,
현실 속 우리 비정규직들은 언제 해고될지 몰라 늘 고개를 숙인다.
둘째, 벤이라는 캐릭터는 '모든 걸 이겨낸 이상적인 노인'으로 그려지지만,
현실의 노년 노동자들은 그리 우아하지 않다.
경비원, 청소원, 배달원 등 노년층이 현실에서 취업하는 자리는
《인턴》에서 묘사되는 '스타트업 사무실' 같은 곳이 아니라
혹독하고 비인간적인 현장들이 대부분이다.
셋째, 줄스의 불안정함은 겉보기에 회사의 경영난과 워킹맘이라는 역할갈등으로 그려지지만,
그 역시 너무나 영화적이다.
대기업에서, 그리고 스타트업에서 하루아침에 잘려 나가는 수많은 직장인들에게
줄스가 겪는 위기는 '고급스러운 고민'처럼만 보인다.
결국 《인턴》은
'모든 세대가 서로 이해하고 손잡으면 해피엔딩이 된다'는 따뜻한 결론으로 나아가지만,
그 이면의 노동 불평등, 불안정한 계약직 노동자의 절망,
노년의 빈곤과 단절 같은 문제는 철저히 가려진다.
■ 나의 소감 : 결국 우리는 인턴인가, 벤인가?
내가 이 영화를 보며 가장 마음이 무거웠던 장면은
벤이 스타트업의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 혼자 탁자에 앉아 조용히 도시락을 먹는 순간이었다.
그 장면은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겪는 '외로움의 풍경'과 겹쳐졌다.
다들 속도전으로 밥을 먹고 자리를 비우는 시간,
나는 항상 구석에 앉아
다음 달에도 이 책상에 앉을 수 있을지 몰라 불안해한다.
벤은 70세지만,
그의 표정에는 20대 비정규직 근로자가 겪는 그 고독,
그 위태로움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벤의 모습은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일종의 판타지이기도 했다.
그는 은퇴 후에도
자신의 연륜과 신뢰, 성실함으로
젊은 세대 사이에서 '존경받는 어른'이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벤처럼 인정받을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우리는 이름 없는 인턴이고,
해고 하루 전날에도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사라지는 존재다.
그래서 나는 벤을 보며 위로보다는 씁쓸함을 더 느꼈다.
그는 '영화 속 인턴'이지만,
나는 '현실 속 인턴'이기 때문이다.
■ 영화의 분위기 : 너무 다정한 공간, 너무 비현실적인 온기
《인턴》의 분위기는 전형적인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작품답게
따뜻하고 부드럽다.
오피스는 세련되고,
사람들은 멋지고,
갈등도 '우아한 방식'으로 풀어진다.
카메라의 톤 역시 전체적으로 밝고
음악은 감미로우며
벤의 미소는 거의 '신의 미소'처럼 포근하다.
하지만 이 분위기가 비정규직 근로자인 나에게는
'현실 도피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나는 매일 갱신되는 계약서,
열악한 복지,
불공정한 해고 통보와 싸우는 사람이다.
그런 내게 이 영화의 공간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었고,
너무나 먼 세계처럼만 보였다.
벤의 손끝에서 나오는 배려와 신사다움은
현실의 노동 시장에서
거의 사치에 가까운 감정들이다.
《인턴》의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도
나는 그런 냉랭한 현실의 공기가 가슴 한편에 차갑게 돌았다.
■ 결론 : '인턴'의 자리에서 인간을 본다는 것
《인턴》은 많은 관객들에게 '따뜻한 영화'로 남았을 것이다.
노년과 청년의 세대 통합,
가족과 일의 균형,
삶의 의미를 다시 찾는 이야기.
그러나 비정규직 근로자인 나는 이 영화를
그렇게만 볼 수 없다.
이 영화가 말하지 않은 수많은 '인턴'들이 있다.
너무 많아서 이름도 얼굴도 기억되지 않는 사람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희망의 이야기'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영화는 나에게
'당신은 여전히 인턴이고,
그 자리는 회사의 구석이 아니라
인생의 중심에서 존엄하게 서야 한다'라고
조용히 말해주는 것 같았다.
벤이든, 찰리든,
혹은 오늘도 구석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는 나이 든.
우리는 모두
인턴이다.
영원히 갱신되는 삶의 계약서에
조용히 서명하며 살아가는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