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라는 직업은 흔히 범죄를 쫓는 사람,
치열한 사건 현장을 누비는 강인한 존재로 인식된다.
그러나 그 실상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묘사되는 모습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범죄도시》(2017)는 그런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이다.
현직 형사로서 이 영화를 접했을 때의 느낌은
'현실과 허구 사이의 스릴'이었다.
영화는 극단적으로 스타일리시하고,
현실의 형사들은 지극히 소박하고 지루하며,
때로는 법의 벽과 절차의 늪 속에서 발버둥 치는 소모적인 존재다.
하지만 동시에
《범죄도시》가 보여준 형사 캐릭터 '마석도(마동석)'는
현실의 우리가 갈망하는
'정의의 본능, 신념, 그리고 강한 책임감'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 1. 현실과 영화 속 형사의 괴리
(1) 영화 속 형사 : 육체, 직감, 통쾌함
《범죄도시》 속 마석도 형사는 거침없고 빠르고 과격하다.
그는 두 말 없이 주먹을 휘두르고,
범죄자는 반드시 잡으며,
정의 구현에는 절대 타협이 없다.
영화 속 경찰 조직 역시 속도감 있고 융통성 있게 움직인다.
치안센터 소장과 지역 조직, 경찰서장과 검찰,
그 사이에 딱 부러지는 명확한 선이 있다.
관객들은 이 리듬과 통쾌함에 열광했다.
특히 범죄의 잔혹함과 이를 해결하는 마석도의 압도적인 '물리력'은
사회의 피로감을 통쾌하게 해소시켜 주는 일종의 카타르시스였다.
(2) 현실의 형사 : 절차, 인내, 지루함
그러나 현실 속 형사의 세계는 영화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지루하다.
범죄자를 검거하기 위해서는 법적 절차가 최우선이며,
몸보다는 머리, 힘보다는 증거가 중요하다.
현장 검거도 중요하지만,
그 검거가 불법 체포나 절차 위반으로 치부되면
오히려 형사 자신이 피의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경찰 내부 조직은 영화처럼 일사불란하거나 속도감 있게 움직이지 않는다.
행정적 절차, 보고 체계, 수사권 조정 등
형사를 둘러싼 제도적 족쇄는 끊임없이 형사의 손과 발을 묶는다.
현장에서는 '무서운 깡패'보다 더 무서운 게
피해자의 변심, 증거 부족, 절차 위반이다.
현실의 형사는 '물리력'보다는 '법리력'을 통해
더욱 치밀하게 사건을 풀어가야 한다.
■ 2. 형사의 눈으로 본 《범죄도시》 감상평
(1) 영화의 판타지와 현실의 피로 사이
현직 형사로서 《범죄도시》를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관객을 위한 통쾌함과 현실을 희생한 과장'이다.
마석도 형사 같은 존재가 현실에 없다면 거짓말이다.
물론 강한 캐릭터, 현장에서 강단 있는 선배 형사들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은 영화 속 마석도처럼 주먹을 휘두르기보다는
말 한마디, 법의 허점 하나를 이용해 사건을 해결한다.
또 영화 속 형사들은 언제나 정의롭고 직감적이지만
현실의 형사는 매번 고민하고 망설이며
절차의 벽을 넘지 못해 울분을 삼킨다.
무엇보다 수많은 범죄자들이
영화처럼 금세 잡히거나
포기하거나 자백하는 경우는 드물다.
(2) 범죄에 대한 사회적 욕망의 대리 충족
《범죄도시》의 인기는
현실의 형사가 해소할 수 없는 사회의 분노를
대리 충족시켰다.
잇따르는 강력 사건,
제도적으로 무장한 범죄자들,
느릿한 절차 속에 답답함을 느끼던 대중들에게
마석도 형사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응징한다'는 방식은
일종의 판타지적 정의였다.
현실의 우리는 그런 판타지가 얼마나 위험한 지도 잘 알고 있다.
법 없이 이루어지는 정의는
언젠가는 스스로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그러나 동시에
'현실의 형사들도 저런 힘이 있었으면'
하고 부러워했던 것도 사실이다.
■ 3. 영화 이후 형사 이미지의 변화
(1) 형사에 대한 긍정적 강화
《범죄도시》는 한국 영화 속 형사 캐릭터의 전형성을 바꾸었다.
기존의 무기력하거나 부패한 형사 이미지 대신
'강력하고 선하며 정의로운' 형사의 이미지가
대중에게 각인되었다.
이런 변화는
일선 경찰의 사기에도 나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현장 형사들의 피로와 고충이
다소나마 사회적으로 이해받고 주목받게 된 계기였다.
특히 젊은 경찰들 사이에서
마석도 같은 형사상을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는 조직 내부적으로도
'더 현장 중심, 더 강한 경찰'을 요구하는 분위기를 불러일으켰다.
(2) 형사의 '과장된 히어로화' 부작용
그러나 부작용도 분명히 존재했다.
대중들은 형사를 ‘마석도’처럼 항상 강하고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고 착각하기 시작했다.
수사에 시간과 절차가 필요한 현실의 형사들에게
'왜 저렇게 질질 끌고 있냐'
'형사들이 왜 범죄자를 못 때려잡냐'
같은 비현실적 요구가 늘었다.
일부 범죄 피해자 가족들이
실제 형사들에게 '왜 영화처럼 하지 못하냐'
'왜 범죄자를 오히려 두둔하냐'며 분노를 표출하는 사례도 있었다.
결국 《범죄도시》는 형사라는 직업의 현실성과 괴리를 더욱 키운 측면이 있었다.
■ 4. 결론: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형사라는 직업은 언제나 '사회가 원하는 것'과 '법이 허용하는 것' 사이의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는 직업이다.
《범죄도시》는 이 줄타기의 한쪽 끝,
즉 '사회가 원하는 통쾌한 응징'을 극단적으로 보여주었다.
현실 속 형사는
그 반대쪽 끝,
'법이 허용하는 제한된 정의'를 따를 수밖에 없다.
현직 형사로서 이 영화는
현실의 피로와 한계를 위로해 주는 즐거운 오락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영화가 영화임을 기억해야 한다.
마석도 형사의 정의와 액션이
관객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 줄 수는 있지만,
현실 속 진짜 형사들은
그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오늘도 증거를 쥐고
보고서를 작성하며
범죄자와 법의 사이를 오가는 복잡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영화는 즐겁게 봐도
현실에서는 '법적 질서'와 '합법적 수사'만이
우리를 지켜주는 유일한 힘이라는 사실을
대중도, 형사도
잊지 말아야 한다.